[이데일리 김지완 기자] “그 있잖아요, 그 뭐야. 노랗고 동그란….”
2056년 서울. 61세 영식(권해효 분)은 늘 먹던 디저트 ‘마들렌’이라는 이름을 좀처럼 떠올리지 못한다. 이미 집에 있는 LP를 다시 주문하고, 평소 잘 만들던 음식의 간을 맞추지 못한다. 아내가 석 달 넘게 맞아 온 인슐린 주사마저 처음 보는 물건처럼 낯설게 느껴진다.
JTBC와 SK케미칼(285130)이 공동 기획하고 대한치매학회가 의학 자문·검수에 참여한 단편영화 ‘영식스티’에 등장하는 장면들이다. 영화는 사소한 ‘깜빡함’에서 시작된 변화가 기억과 언어, 판단, 일상생활로 조금씩 번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각 장면을 의학적으로 풀어보면 영화 속에 숨겨놓은 경도인지장애(MCI)와 초기 알츠하이머병의 신호가 보다 선명하게 보인다.
같은 물건 또 샀다면…단순 건망증 아닐 수도
나이가 들면서 사람이나 물건 이름이 순간적으로 떠오르지 않는 현상은 흔하다. 영식이 ‘마들렌’이라는 단어를 잠시 기억하지 못한 장면 하나만 놓고 보면 정상 노화와 구별하기 어렵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이후 다른 변화들이 잇따른다. 주문한 물건을 카페에 두고 오고, 오후 5시를 오후 7시로 착각하며 차량 지붕에 커피를 올려놓은 채 운전한다. 이미 가지고 있는 LP를 다시 산다.
특히 ‘중복 구매’는 단어 하나가 생각나지 않는 것과는 성격이 다르다. 자신이 물건을 샀다는 최근 경험 자체를 기억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정보를 저장하고 회상하는 ‘일화기억’의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2014년 국제학술지 ‘행동신경과학 프런티어스’(Frontiers in Behavioral Neuroscience)에 게재된 논문 ‘경도인지장애와 알츠하이머병에서 나타나는 공간 탐색 변화의 신경학적 연관성(Neural correlates of spatial navigation changes in mild cognitive impairment and Alzheimer’s disease)‘에 따르면, 알츠하이머병은 새로운 기억을 저장하는 역할을 하는 뇌 부위부터 서서히 손상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해마와 그 주변 부위가 먼저 영향을 받기 때문에, 최근에 들은 이야기나 방금 한 일을 반복해서 잊는 증상이 초기에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최근 있었던 일이나 대화를 반복해서 잊거나 같은 질문과 행동을 되풀이하기 시작한다면 단순한 ’나이 탓‘으로만 넘겨서는 안 된다.
음식 간 못 맞추고 익숙한 물건 낯설다면…인지기능 ’경고등‘
영화가 진행되면서 영식의 문제는 단순 기억력 영역을 벗어난다.
자녀 이름을 바로 떠올리지 못하고 아내가 매일 사용하던 인슐린 주사를 처음 보는 것처럼 바라본다. 평소 능숙했던 음식의 간도 제대로 맞추지 못한다.
요리는 의외로 고도의 인지 활동이다. 필요한 재료를 기억하고 조리 순서를 계획한 뒤 맛을 보고 부족한 부분을 판단해 수정해야 한다. 기억력뿐 아니라 주의력과 판단력, 집행기능이 동시에 동원된다.
후각 변화도 살펴볼 부분이다. 2019년 2월 국제학술지 ’후두경‘(The Laryngoscope)에 게재된 메타분석 논문 ’경도인지장애와 알츠하이머병에서의 후각 기능: 메타분석‘(Olfactory function in mild cognitive impairment and Alzheimer’s disease: A meta-analysis)에서는 MCI와 알츠하이머병 환자가 건강한 고령자보다 후각 기능, 특히 냄새를 구별하고 식별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한 번 음식 맛을 이상하게 낸 것을 치매 신호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전에 능숙하게 하던 일에서 반복적인 실수가 나타나고 기억·언어 영역의 변화까지 동반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김희진 한양대학교병원 신경과 교수는 “평소와 다른 기억이나 행동의 변화가 반복되거나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친다면 단순 노화로 넘기지 말고 의료진과 상담해 현재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뇌 영양제’보다 병원 먼저…MCI가 치료 골든타임
영화 속 영식처럼 일상생활은 대부분 가능하지만 기억력이나 판단력이 예전보다 뚜렷하게 떨어진 상태다. 아내 미경은 영식의 이상 행동을 더 이상 단순한 건망증으로 넘기지 않고 병원에 가보자고 권한다. 의학적으로도 이 시점이 중요하다.
일상생활은 가능하지만 기억력이나 판단력이 이전보다 떨어진 경도인지장애 단계라면 원인을 확인하고 관리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MCI라고 모두 치매로 진행하는 것은 아니다. 병원에서는 인지기능검사와 MRI, 아밀로이드 PET, 혈액검사 등을 통해 알츠하이머병과 관련된 변화가 실제 시작됐는지를 살핀다.
이 단계에서는 운동과 혈압·당뇨·콜레스테롤 관리, 인지훈련 등을 기본으로 하고 환자 상태에 따라 표준화 은행잎 추출물 같은 의약품도 관리 옵션으로 고려할 수 있다.
문제는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낀 사람이 병원을 찾기보다 이른바 ‘뇌 영양제’부터 찾는 경우다. 건강기능식품은 질병을 진단하거나 치료하기 위한 의약품이 아니다. 건기식은 ‘노화로 인해 저하된 인지력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음’이라는 기능성을 인정받은 것이지 경도인지장애나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로 허가된 것은 아니다.
결국 영화에서 미경이 영식에게 병원 방문을 권하는 장면은 단순한 결말이 아니다. 치매로 진행한 뒤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경도인지장애 단계에서부터 찾아내 관리해야 한다는 영화의 핵심 메시지인 셈이다
김희진 한양대학교병원 신경과 교수는 “내가 알아야 그때부터 우리가 고칠 수 있고 더 좋아질 수 있다”며 “병원에 가면 사형선고를 받는 것처럼 생각하는 분들이 있지만 충분히 여러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경도인지장애 진단 후 12년, 치매 진행 없었던 비결은?
‘영식스티’의 마지막에서 영식과 아내는 결국 병원에 가기로 결정한다.
어쩌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다. 기억력 저하를 인정하는 순간이 치매의 시작이 아니라 오히려 치료와 관리의 시작일 수 있기 때문이다.
김희진 교수는 실제 진료 현장에서 이를 보여주는 사례도 소개했다.
김 교수는 지난 16일 영식스티 시사회가 끝난 뒤 “한 환자는 2014년 경도인지장애를 진단받은 뒤 (은행잎 추출물 240㎎ 복용 등의 관리로) 현재까지 12년이 지났지만 치매 단계로 진행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양영순 순천향대 천안병원 신경과 교수 연구팀은 2025년 8월 국제학술지 ‘신경학 프런티어스’(Frontiers in Neurology)에 ‘아밀로이드 PET 양성 경도인지장애 환자에서 은행잎 추출물의 효과’(Efficacy of Ginkgo biloba extract in amyloid PET-positive patients with mild cognitive impairment)를 발표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은행잎 추출물 240mg을 매일 복용한 42명에서는 알츠하이머 치매로 진행한 환자가 한 명도 없었던 반면, 비교군 22명에서는 13.6%가 치매로 진행했다. 은행잎 추출물군은 인지기능과 일상생활능력도 더 잘 유지됐다. 특히 혈액에서 치매 원인 단백질인 베타아밀로이드가 서로 뭉치려는 정도, 즉 뇌 속 아밀로이드 찌꺼기가 만들어지기 전 단계의 변화를 보여주는 지표(MDS-OAβ)도 감소했다. 이 연구는 경도인지장애 환자 64명을 12개월간 추적했다.
김 교수는 “본인의 상태를 알고 적극적으로 개입하면 독립성과 자존감을 지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방송인 홍혜걸(의학박사) 씨는 자신의 유튜브를 통해 인간의 자존감은 ‘내 몸을 내가 통제할 수 있는가’와 ‘내 삶을 내가 판단할 수 있는가’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즉, 배뇨·배변 조절 능력과 인지기능이 노년 존엄성의 지탱하는 마지막 두 축이란 얘기다.
영화는 말한다. “기억을 완전히 잃은 뒤가 아니라, ‘예전과 뭔가 다르다’고 느끼는 바로 그때가 병원에 갈 때다”.
2056년 서울. 61세 영식(권해효 분)은 늘 먹던 디저트 ‘마들렌’이라는 이름을 좀처럼 떠올리지 못한다. 이미 집에 있는 LP를 다시 주문하고, 평소 잘 만들던 음식의 간을 맞추지 못한다. 아내가 석 달 넘게 맞아 온 인슐린 주사마저 처음 보는 물건처럼 낯설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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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장면을 의학적으로 풀어보면 영화 속에 숨겨놓은 경도인지장애(MCI)와 초기 알츠하이머병의 신호가 보다 선명하게 보인다.
같은 물건 또 샀다면…단순 건망증 아닐 수도
나이가 들면서 사람이나 물건 이름이 순간적으로 떠오르지 않는 현상은 흔하다. 영식이 ‘마들렌’이라는 단어를 잠시 기억하지 못한 장면 하나만 놓고 보면 정상 노화와 구별하기 어렵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이후 다른 변화들이 잇따른다. 주문한 물건을 카페에 두고 오고, 오후 5시를 오후 7시로 착각하며 차량 지붕에 커피를 올려놓은 채 운전한다. 이미 가지고 있는 LP를 다시 산다.
특히 ‘중복 구매’는 단어 하나가 생각나지 않는 것과는 성격이 다르다. 자신이 물건을 샀다는 최근 경험 자체를 기억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정보를 저장하고 회상하는 ‘일화기억’의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2014년 국제학술지 ‘행동신경과학 프런티어스’(Frontiers in Behavioral Neuroscience)에 게재된 논문 ‘경도인지장애와 알츠하이머병에서 나타나는 공간 탐색 변화의 신경학적 연관성(Neural correlates of spatial navigation changes in mild cognitive impairment and Alzheimer’s disease)‘에 따르면, 알츠하이머병은 새로운 기억을 저장하는 역할을 하는 뇌 부위부터 서서히 손상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해마와 그 주변 부위가 먼저 영향을 받기 때문에, 최근에 들은 이야기나 방금 한 일을 반복해서 잊는 증상이 초기에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최근 있었던 일이나 대화를 반복해서 잊거나 같은 질문과 행동을 되풀이하기 시작한다면 단순한 ’나이 탓‘으로만 넘겨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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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진행되면서 영식의 문제는 단순 기억력 영역을 벗어난다.
자녀 이름을 바로 떠올리지 못하고 아내가 매일 사용하던 인슐린 주사를 처음 보는 것처럼 바라본다. 평소 능숙했던 음식의 간도 제대로 맞추지 못한다.
요리는 의외로 고도의 인지 활동이다. 필요한 재료를 기억하고 조리 순서를 계획한 뒤 맛을 보고 부족한 부분을 판단해 수정해야 한다. 기억력뿐 아니라 주의력과 판단력, 집행기능이 동시에 동원된다.
후각 변화도 살펴볼 부분이다. 2019년 2월 국제학술지 ’후두경‘(The Laryngoscope)에 게재된 메타분석 논문 ’경도인지장애와 알츠하이머병에서의 후각 기능: 메타분석‘(Olfactory function in mild cognitive impairment and Alzheimer’s disease: A meta-analysis)에서는 MCI와 알츠하이머병 환자가 건강한 고령자보다 후각 기능, 특히 냄새를 구별하고 식별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한 번 음식 맛을 이상하게 낸 것을 치매 신호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전에 능숙하게 하던 일에서 반복적인 실수가 나타나고 기억·언어 영역의 변화까지 동반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김희진 한양대학교병원 신경과 교수는 “평소와 다른 기억이나 행동의 변화가 반복되거나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친다면 단순 노화로 넘기지 말고 의료진과 상담해 현재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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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영식처럼 일상생활은 대부분 가능하지만 기억력이나 판단력이 예전보다 뚜렷하게 떨어진 상태다. 아내 미경은 영식의 이상 행동을 더 이상 단순한 건망증으로 넘기지 않고 병원에 가보자고 권한다. 의학적으로도 이 시점이 중요하다.
일상생활은 가능하지만 기억력이나 판단력이 이전보다 떨어진 경도인지장애 단계라면 원인을 확인하고 관리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MCI라고 모두 치매로 진행하는 것은 아니다. 병원에서는 인지기능검사와 MRI, 아밀로이드 PET, 혈액검사 등을 통해 알츠하이머병과 관련된 변화가 실제 시작됐는지를 살핀다.
이 단계에서는 운동과 혈압·당뇨·콜레스테롤 관리, 인지훈련 등을 기본으로 하고 환자 상태에 따라 표준화 은행잎 추출물 같은 의약품도 관리 옵션으로 고려할 수 있다.
문제는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낀 사람이 병원을 찾기보다 이른바 ‘뇌 영양제’부터 찾는 경우다. 건강기능식품은 질병을 진단하거나 치료하기 위한 의약품이 아니다. 건기식은 ‘노화로 인해 저하된 인지력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음’이라는 기능성을 인정받은 것이지 경도인지장애나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로 허가된 것은 아니다.
결국 영화에서 미경이 영식에게 병원 방문을 권하는 장면은 단순한 결말이 아니다. 치매로 진행한 뒤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경도인지장애 단계에서부터 찾아내 관리해야 한다는 영화의 핵심 메시지인 셈이다
김희진 한양대학교병원 신경과 교수는 “내가 알아야 그때부터 우리가 고칠 수 있고 더 좋아질 수 있다”며 “병원에 가면 사형선고를 받는 것처럼 생각하는 분들이 있지만 충분히 여러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경도인지장애 진단 후 12년, 치매 진행 없었던 비결은?
‘영식스티’의 마지막에서 영식과 아내는 결국 병원에 가기로 결정한다.
어쩌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다. 기억력 저하를 인정하는 순간이 치매의 시작이 아니라 오히려 치료와 관리의 시작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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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는 지난 16일 영식스티 시사회가 끝난 뒤 “한 환자는 2014년 경도인지장애를 진단받은 뒤 (은행잎 추출물 240㎎ 복용 등의 관리로) 현재까지 12년이 지났지만 치매 단계로 진행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양영순 순천향대 천안병원 신경과 교수 연구팀은 2025년 8월 국제학술지 ‘신경학 프런티어스’(Frontiers in Neurology)에 ‘아밀로이드 PET 양성 경도인지장애 환자에서 은행잎 추출물의 효과’(Efficacy of Ginkgo biloba extract in amyloid PET-positive patients with mild cognitive impairment)를 발표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은행잎 추출물 240mg을 매일 복용한 42명에서는 알츠하이머 치매로 진행한 환자가 한 명도 없었던 반면, 비교군 22명에서는 13.6%가 치매로 진행했다. 은행잎 추출물군은 인지기능과 일상생활능력도 더 잘 유지됐다. 특히 혈액에서 치매 원인 단백질인 베타아밀로이드가 서로 뭉치려는 정도, 즉 뇌 속 아밀로이드 찌꺼기가 만들어지기 전 단계의 변화를 보여주는 지표(MDS-OAβ)도 감소했다. 이 연구는 경도인지장애 환자 64명을 12개월간 추적했다.
김 교수는 “본인의 상태를 알고 적극적으로 개입하면 독립성과 자존감을 지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방송인 홍혜걸(의학박사) 씨는 자신의 유튜브를 통해 인간의 자존감은 ‘내 몸을 내가 통제할 수 있는가’와 ‘내 삶을 내가 판단할 수 있는가’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즉, 배뇨·배변 조절 능력과 인지기능이 노년 존엄성의 지탱하는 마지막 두 축이란 얘기다.
영화는 말한다. “기억을 완전히 잃은 뒤가 아니라, ‘예전과 뭔가 다르다’고 느끼는 바로 그때가 병원에 갈 때다”.
김지완 2pa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