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나은경 기자] 페스트는 중세와 함께 사라진 병처럼 여겨지지만 지금도 야생 설치류와 벼룩 사이에서 순환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19~2025년 10개국에서 의심 환자 3847명과 사망자 423명이 보고됐습니다. 자연발생 감염에 대응하기 위해 각국 연구기관에서는 페스트균을 이용해 진단법과 백신, 치료제를 연구하고 생물테러 가능성에도 대비합니다.
최근에는 러시아 이르쿠츠크 항페스트연구소 직원이 원인 불명의 폐렴으로 숨지면서 페스트균이 든 시험관을 깨뜨려 감염됐다는 현지 보도가 나왔는데요. 러시아 당국은 실험실 사고와 페스트 감염을 부인했습니다. 접촉자 등을 대상으로 5000건 넘게 검사했지만 추가 확진자나 연관된 중증 폐렴 환자는 확인되지 않았고, 예방적으로 시행한 격리 조치도 지난 8일 해제됐습니다. 다만 WHO는 사망 원인이 여전히 규명되지 않았다며 러시아 측에 추가 자료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페스트는 감염이 심해지면 피부 아래 출혈과 혈액순환 장애로 손발 등의 조직이 검게 괴사할 수 있어 ‘검은 죽음’이라는 뜻의 흑사병(黑死病)으로 불렸습니다. 페스트균인 ‘예르시니아 페스티스’(Yersinia pestis)가 일으키는 급성 감염병입니다.
자연에서는 페스트균에 감염된 쥐와 마멋 등 야생 설치류의 피를 빨아먹은 벼룩이 사람을 물면서 주로 감염됩니다. 페스트로 설치류가 죽으면 벼룩이 새로운 숙주를 찾아 사람이나 반려동물로 옮겨갈 수 있습니다. 감염된 동물의 사체를 만지거나 가죽을 벗기는 과정에서 균이 상처로 들어가기도 하며, 감염된 고양이의 체액이나 호흡기 분비물도 감염원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감염되면 대개 림프절형으로 시작하지만 균이 혈액이나 폐로 퍼지면 패혈증형·폐렴형으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폐렴형 환자가 기침할 때 나온 호흡기 입자를 가까이에서 흡입하면 드물게 사람 간 전파도 일어납니다. 국내에서는 발생하거나 의심 환자가 확인되면 즉시 신고해야 하는 제1급 법정감염병으로 관리됩니다.
페스트가 두려운 이유는 치료하지 않았을 때 치명률이 높고 진행 속도도 빠르기 때문입니다. WHO에 따르면 치료받지 않은 림프절형 페스트의 치명률은 30~60%에 달하며, 패혈증형과 폐렴형은 조기 치료하지 않으면 사실상 치명적입니다. 특히 폐렴형은 증상이 시작된 뒤 18~24시간 안에도 사망할 수 있어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항생제를 투여해야 합니다.
가장 흔한 림프절형은 갑작스러운 고열과 오한, 두통, 근육통과 함께 사타구니나 겨드랑이, 목의 림프절이 붓고 극심한 통증이 나타납니다. 균이 혈액으로 퍼지는 패혈증형은 복통과 구토, 쇼크, 피부 아래 출혈과 조직 괴사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폐를 침범한 폐렴형은 호흡곤란과 가슴 통증, 기침, 피가 섞인 가래 등이 빠르게 나타납니다. 림프절형은 일반적으로 사람 사이에서 쉽게 전파되지 않지만 폐렴형은 환자의 호흡기 입자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옮을 수 있습니다.
페스트 치료에는 스트렙토마이신과 겐타마이신, 독시사이클린, 시프로플록사신·레보플록사신·목시플록사신 등의 항생제를 사용합니다. 환자의 나이와 증상의 중증도, 신장 기능, 약제 감수성 등을 고려해 약과 투여 경로를 선택하며 일반적인 치료 기간은 10~14일입니다.
국내 허가사항에 페스트 치료가 명시된 약으로는 영풍제약의 ‘영풍독시사이클린정100㎎’(성분명 독시사이클린) 등이 있습니다. 독시사이클린은 페스트균의 단백질 합성을 방해해 증식을 억제합니다. 페스트 치료에 쓰이는 다른 성분의 국내 제품으로는 제일약품(271980)의 ‘크라비트정’(레보플록사신), 바이엘코리아의 ‘씨프로바이정’(시프로플록사신)과 ‘아벨록스정·주’(목시플록사신) 등이 있습니다.
페스트 치료제 개발에서 눈에 띄는 점은 사람에게 약효를 확인하는 일반적인 임상시험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치료 효과를 알아보기 위해 건강한 사람에게 의도적으로 페스트균을 감염시킬 수 없고, 자연발생 환자도 적어 대규모 임상시험을 진행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이런 감염병에 ‘동물규칙’(Animal Rule)을 적용합니다. 동물실험에서 생존율 개선 등 치료 효과를 확인하고 사람에게서는 안전성과 약동학 자료를 확보하면 의약품을 승인할 수 있도록 한 제도입니다. 이를 통해 얀센의 ‘레바퀸’(레보플록사신)은 2012년, 바이엘의 ‘시프로’(시프로플록사신)와 ‘아벨록스’(목시플록사신)는 2015년 폐렴형·패혈증형 페스트의 치료 및 노출 후 예방약으로 FDA 승인을 받았습니다. 기존 항생제가 효과를 보이기 때문에 현재까지 페스트균만을 겨냥한 별도의 표적치료제나 허가된 항체치료제는 없습니다.
예방도 가능합니다. 페스트 유행 지역에서는 벼룩에 물리지 않도록 기피제를 사용하고 야생 설치류나 죽은 동물의 사체를 만지지 않아야 합니다. 폐렴형 환자와 가까운 거리에서 지속적으로 접촉했거나 감염된 체액·조직에 직접 노출됐다면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독시사이클린이나 플루오로퀴놀론계 항생제를 7일간 예방적으로 복용할 수 있습니다.
일반인이 접종할 수 있는 페스트 백신은 아직 없습니다. WHO도 페스트균에 반복적으로 노출될 수 있는 연구자와 의료진 등 고위험군을 제외하면 예방접종을 권고하지 않습니다. 현재 미국 다이나백스테크놀로지스와 국방부가 페스트 백신 후보물질 ‘rF1V-1018’을 임상 2상에서 개발하고 있지만 아직 허가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페스트는 치료제 자체가 없는 병이 아니라 치료 시기를 놓치면 위험해지는 병입니다. 유행 지역을 다녀오거나 감염 동물과 접촉한 뒤 1~7일 안에 갑작스러운 고열과 통증이 심한 림프절 종창, 호흡곤란이나 피 섞인 가래가 나타난다면 즉시 진료를 받고 여행력과 접촉력을 의료진에게 알려야 합니다.
최근에는 러시아 이르쿠츠크 항페스트연구소 직원이 원인 불명의 폐렴으로 숨지면서 페스트균이 든 시험관을 깨뜨려 감염됐다는 현지 보도가 나왔는데요. 러시아 당국은 실험실 사고와 페스트 감염을 부인했습니다. 접촉자 등을 대상으로 5000건 넘게 검사했지만 추가 확진자나 연관된 중증 폐렴 환자는 확인되지 않았고, 예방적으로 시행한 격리 조치도 지난 8일 해제됐습니다. 다만 WHO는 사망 원인이 여전히 규명되지 않았다며 러시아 측에 추가 자료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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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서는 페스트균에 감염된 쥐와 마멋 등 야생 설치류의 피를 빨아먹은 벼룩이 사람을 물면서 주로 감염됩니다. 페스트로 설치류가 죽으면 벼룩이 새로운 숙주를 찾아 사람이나 반려동물로 옮겨갈 수 있습니다. 감염된 동물의 사체를 만지거나 가죽을 벗기는 과정에서 균이 상처로 들어가기도 하며, 감염된 고양이의 체액이나 호흡기 분비물도 감염원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감염되면 대개 림프절형으로 시작하지만 균이 혈액이나 폐로 퍼지면 패혈증형·폐렴형으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폐렴형 환자가 기침할 때 나온 호흡기 입자를 가까이에서 흡입하면 드물게 사람 간 전파도 일어납니다. 국내에서는 발생하거나 의심 환자가 확인되면 즉시 신고해야 하는 제1급 법정감염병으로 관리됩니다.
페스트가 두려운 이유는 치료하지 않았을 때 치명률이 높고 진행 속도도 빠르기 때문입니다. WHO에 따르면 치료받지 않은 림프절형 페스트의 치명률은 30~60%에 달하며, 패혈증형과 폐렴형은 조기 치료하지 않으면 사실상 치명적입니다. 특히 폐렴형은 증상이 시작된 뒤 18~24시간 안에도 사망할 수 있어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항생제를 투여해야 합니다.
가장 흔한 림프절형은 갑작스러운 고열과 오한, 두통, 근육통과 함께 사타구니나 겨드랑이, 목의 림프절이 붓고 극심한 통증이 나타납니다. 균이 혈액으로 퍼지는 패혈증형은 복통과 구토, 쇼크, 피부 아래 출혈과 조직 괴사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폐를 침범한 폐렴형은 호흡곤란과 가슴 통증, 기침, 피가 섞인 가래 등이 빠르게 나타납니다. 림프절형은 일반적으로 사람 사이에서 쉽게 전파되지 않지만 폐렴형은 환자의 호흡기 입자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옮을 수 있습니다.
페스트 치료에는 스트렙토마이신과 겐타마이신, 독시사이클린, 시프로플록사신·레보플록사신·목시플록사신 등의 항생제를 사용합니다. 환자의 나이와 증상의 중증도, 신장 기능, 약제 감수성 등을 고려해 약과 투여 경로를 선택하며 일반적인 치료 기간은 10~14일입니다.
국내 허가사항에 페스트 치료가 명시된 약으로는 영풍제약의 ‘영풍독시사이클린정100㎎’(성분명 독시사이클린) 등이 있습니다. 독시사이클린은 페스트균의 단백질 합성을 방해해 증식을 억제합니다. 페스트 치료에 쓰이는 다른 성분의 국내 제품으로는 제일약품(271980)의 ‘크라비트정’(레보플록사신), 바이엘코리아의 ‘씨프로바이정’(시프로플록사신)과 ‘아벨록스정·주’(목시플록사신)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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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이런 감염병에 ‘동물규칙’(Animal Rule)을 적용합니다. 동물실험에서 생존율 개선 등 치료 효과를 확인하고 사람에게서는 안전성과 약동학 자료를 확보하면 의약품을 승인할 수 있도록 한 제도입니다. 이를 통해 얀센의 ‘레바퀸’(레보플록사신)은 2012년, 바이엘의 ‘시프로’(시프로플록사신)와 ‘아벨록스’(목시플록사신)는 2015년 폐렴형·패혈증형 페스트의 치료 및 노출 후 예방약으로 FDA 승인을 받았습니다. 기존 항생제가 효과를 보이기 때문에 현재까지 페스트균만을 겨냥한 별도의 표적치료제나 허가된 항체치료제는 없습니다.
예방도 가능합니다. 페스트 유행 지역에서는 벼룩에 물리지 않도록 기피제를 사용하고 야생 설치류나 죽은 동물의 사체를 만지지 않아야 합니다. 폐렴형 환자와 가까운 거리에서 지속적으로 접촉했거나 감염된 체액·조직에 직접 노출됐다면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독시사이클린이나 플루오로퀴놀론계 항생제를 7일간 예방적으로 복용할 수 있습니다.
일반인이 접종할 수 있는 페스트 백신은 아직 없습니다. WHO도 페스트균에 반복적으로 노출될 수 있는 연구자와 의료진 등 고위험군을 제외하면 예방접종을 권고하지 않습니다. 현재 미국 다이나백스테크놀로지스와 국방부가 페스트 백신 후보물질 ‘rF1V-1018’을 임상 2상에서 개발하고 있지만 아직 허가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페스트는 치료제 자체가 없는 병이 아니라 치료 시기를 놓치면 위험해지는 병입니다. 유행 지역을 다녀오거나 감염 동물과 접촉한 뒤 1~7일 안에 갑작스러운 고열과 통증이 심한 림프절 종창, 호흡곤란이나 피 섞인 가래가 나타난다면 즉시 진료를 받고 여행력과 접촉력을 의료진에게 알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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