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료기사는 인쇄용 화면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P “정치권 민원 없이 임상 못하나”…김승원 사태로 드러난 식약처 민낯

등록 2026-09-17 오전 10:50:03
    [청탁 부르는 식약처 임상심사]①

팜이데일리 프리미엄 기사를 무단 전재·유포하는 행위는 불법이며 형사 처벌 대상입니다.
이에 대해 팜이데일리는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강력히 대응합니다.

이 기사는 2026년9월17일 10시50분에 팜이데일리 프리미엄 콘텐츠로 선공개 되었습니다.

구독하기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데일리 김새미 기자] “한 번도 사람에게 투여된 적 없는 혁신신약의 경우 국내에서 초기 임상시험을 진행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적지 않은 국내 바이오기업들이 국내 임상을 포기하고 해외로 나가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한국이 신약개발 강국으로 도약하기는 요원하다고 본다.”

바이오업계 한 원로(元老)의 지적이다. 실제 바이오솔루션(086820)은 지난해 2월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동종 연골세포치료제 ‘카티로이드’의 임상 1/2상 임상시험계획(IND)을 제출했지만 비임상·독성시험 자료 등에 대한 추가 보완 요구를 거쳐 같은해 6월 최종 반려됐다. 바이오솔루션은 식약처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국내 IND에 다시 도전하는 대신 호주 등 해외에서 임상을 추진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IND 승인을 받았지만 상당한 시일이 걸린 사례도 있다. 앱클론(174900)은 2021년 6월 CAR-T 치료제 ‘AT101’의 국내 임상 1/2상 IND를 신청했지만 최종 승인은 같은해 12월에야 받았다. 식약처의 법정 처리기간은 30일이지만 실제 신청부터 승인까진 약 6개월이 걸린 셈이다. 당시 심사 과정에서 의약품 제조·품질관리(GMP)와 제조·품질관리(CMC) 관련 자료 등에 대한 보완 절차를 거치면서 실제 임상 진입 시점도 당초 예상보다 늦어진 케이스다.

IND 문턱에 걸린 K바이오…‘30일 심사’에 6개월 걸리기도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2021년 제넨셀의 코로나19 치료제 임상시험계획(IND)을 신속하게 처리해달라는 취지로 김강립 당시 식품의약품안전처장에게 연락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제약·바이오업계의 인허가 ‘청탁’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김 후보자가 연락한 약 2주 뒤인 2021년 10월 26일 제넨셀의 국내 임상 2/3상 IND는 승인됐다.

바이오업계에선 이번 논란을 특정 정치인과 기업의 일탈만으로 볼 수 있느냐는 목소리도 제기됐다. 식약처 출신의 한 바이오업계 임원은 “식약처 인허가와 관련해 외부 인맥을 동원해 진행 상황을 알아보거나 처리를 부탁하는 일이 드문 일은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외부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과거에 몸담았던 업체에서도 비슷한 청탁을 한 일이 있는 걸로 안다”고 실토했다.

국회를 통한 민원 전달이 생소한 일은 아니라는 얘기도 나온다. 국회 대관 업무에 정통한 업계 관계자는 “국회의원실에는 기업이나 협회, 지역구 등에서 각종 민원이 수시로 들어오고, 이 중 일부를 의원이 관계 부처 장관이나 기관장에게 직접 전달하는 일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문제는 통상적인 민원 전달과 특정 기업의 인허가에 영향을 미치려는 부적절한 개입의 경계다. IND처럼 환자 안전과 과학적 판단이 요구되는 사안에서는 단순 진행상황 문의와 신속처리 요청, 심사 결과에 영향을 미치려는 요구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식약처는 ‘30일’이라는데…바이오기업들 “보완 거듭하다 1년 훌쩍”

국내 바이오기업들이 공식적인 절차가 아닌 정치권 등 외부 도움에 기댈 수밖에 없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불확실성이다. 업계에서는 IND가 실제 승인되기까지 걸리는 기간과 보완 범위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을 문제로 꼽는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식약처는 보완에 걸린 기업의 준비기간을 제외하고 실제 심사한 기간을 계산한다”며 “식약처는 30일 안에 처리했다고 보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보완시험까지 포함해 실제로는 1년 넘게 걸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식약처가 접수 20일째 추가 시험자료를 요구하고 기업이 이를 만드는 데 1년을 썼다면 해당 기간은 식약처의 순수 심사 기간과 구분된다. 기업이 자료를 다시 제출한 뒤 식약처가 남은 기간 동안 심사를 마치면 식약처가 집계하는 심사 기간과 기업이 체감하는 전체 기간 사이에 큰 차이가 발생한다.

국내 임상 승인 심사 병목 핵심 원인으로는 반복적인 보완 요구와 심사 기준의 불투명성이 지목된다. 한 임상시험수탁기관(CRO) 대표는 “IND의 법정 처리기간은 30일이지만 보완이 거듭되면서 실제로는 3개월에서 1년 이상 걸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미국과 비교하면 심사 속도가 약 4배 느리다”고 주장했다.

그는 “해외에서 이미 진행 중인 임상도 국내에서는 추가 자료 요구나 반려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어 국내 기업들이 처음부터 해외에서 임상을 시작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며 “혁신 신약의 최초인체투여(FIH) 임상은 국내에서 사실상 어렵다”고 비판했다.

IND 밀리면 투자도 흔들…바이오벤처 덮치는 ‘전화 한 통’의 유혹

작은 스타트업이나 바이오벤처 입장에서 IND 승인은 기업 존폐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이벤트다. 임상 진입 자체가 기업가치와 자금 조달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신약후보물질이 IND를 통과하면 인체 투약이 가능한 개발 자산으로 평가받기 시작하면서 후속 투자유치와 기술이전 가능성도 높아진다. 상장사라면 IND 승인 여부가 주가와 기업가치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에는 치료제 개발에 뛰어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기업가치 상승 재료로 받아들여졌다. 당시 막대한 투자금을 조달하고도 해당 후보물질이 실제 IND와 임상을 거쳐 품목허가까지 갈 수 있는지 충분히 검증하지 않은 사례도 적지 않았다.

바이오벤처 입장에서는 IND 심사 과정에서 보완 요구가 반복되거나 승인 시점이 늦어지면 임상 일정 전체가 밀린다. 현금 소진 부담이 커지는 것은 물론 후속 투자와 파트너링 일정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신약개발 경험과 규제 전문인력이 부족한 바이오벤처일수록 예상하지 못한 보완 요구를 더 큰 위험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구조가 일부 기업을 공식 절차 밖의 도움으로 내모는 유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기업이 심사 기준과 보완 범위, 승인 시점을 예측하기 어렵다고 느낄수록 심사가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왜 늦어지는지, 조금이라도 빨리 처리할 수 없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전관이나 인맥, 국회 민원 등에 기대려는 유혹이 커진다는 것이다.

한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심사 자료가 부실한 상태에서 IND 승인을 재촉하거나 외부 압력을 통해 심사에 영향을 미치려는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면서도 “공식 소통 과정에서 답답함을 겪다 보니 비공식 접촉에 대한 유혹을 느끼는 이들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식약처 조직과 인력은 확대됐지만 산업계에서는 심사 속도나 소통 측면에서 그 효과를 충분히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며 “기업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과 별개로 식약처의 심사 시스템도 예측 가능성과 소통 측면에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모든 IND 지연을 식약처 탓으로 돌리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바이오텍의 신약개발 경험 부족도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식약처 출신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바이오텍 창업자나 최고경영자(CEO) 가운데 기술 자체는 잘 알지만 실제 신약을 개발해본 경험까지 갖춘 사람은 많지 않다”며 “IND나 품목허가까지 끌고 가려면 심사 과정에서 무엇이 문제가 될지를 거꾸로 생각해 현재 필요한 데이터를 만들어야 하는데 국내에는 전체 개발 과정을 내다볼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