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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암세포 ‘수배전단’ 뿌리고 ‘T세포 군대’ 키우는 암백신…모더나 성공에 항암 판 바뀐다

등록 2026-08-20 오후 3:25:03
    모더나, 키트루다 병용 흑색종 3상서 핵심지표 충족
    예방백신 아닌 항암제…면역관문억제제 병용 시너지
    애스톤 2상 톱라인 앞둬…이뮤노믹도 美 임상 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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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나은경 기자] 암세포 얼굴을 외운 면역세포가 몸속을 돌며 수술 후 남은 암세포를 찾아낸다. 모더나가 임상 3상에서 가능성을 입증한 ‘암백신’은 주사 한 번으로 암을 예방하는 백신이 아니라 면역세포에 암과 싸우는 법을 가르쳐 재발을 막는 항암제다. 개인맞춤형 메신저리보핵산(mRNA) 암백신이 처음으로 후기 임상의 문턱을 넘으면서 수십 년간 시행착오를 거듭해온 치료용 암백신 시장도 전환점을 맞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모더나(티커 MRNA)와 미국 머크(MSD)는 지난 19일(현지시간) 개인맞춤형 mRNA 치료제 ‘인티스메란 오토진’과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를 병용한 흑색종 임상 3상 ‘INTerpath-001’이 1차 지표인 무재발생존기간과 주요 2차 지표인 원격전이 없는 생존기간을 모두 충족했다고 발표했다. 개인맞춤형 신생항원 치료제와 mRNA 암 치료제가 임상 3상에서 성공한 첫 사례다. 모더나 주가가 발표 당일 177% 급등한 것도 흑색종 치료제 하나의 성공을 넘어 mRNA 기술을 폐암·방광암·신장암 등으로 확장할 가능성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스테판 방셀 모더나 최고경영자(CEO)가 19일(현지시간) 공개된 공식 IR 영상에서 개인맞춤형 mRNA 암백신 ‘인티스메란 오토진’의 흑색종 임상 3상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모더나 IR 영상 갈무리)
스테판 방셀 모더나 최고경영자(CEO)가 19일(현지시간) 공개된 공식 IR 영상에서 개인맞춤형 mRNA 암백신 ‘인티스메란 오토진’의 흑색종 임상 3상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모더나 IR 영상 갈무리)
스테판 방셀 모더나 최고경영자(CEO)는 19일(현지시간) 임상 3상 결과 발표 직후 공개한 공식 투자자 콘텐츠 ‘IR 인사이트’에서 “개별 환자의 암에 맞춘 mRNA 치료제를 만든다는 구상은 오랫동안 꿈에 가까웠지만, 이제 그 꿈을 현실로 바꾸기 시작했다”며 “이번 성과는 하나의 파이프라인에 그치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의약품 계열의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오랜 연구가 결실을 맺은 데 대한 벅찬 소회를 전했다.

백신 이름 단 항암제…면역세포에 표적 각인

인티스메란은 환자에게 똑같은 제품을 투여하는 일반적인 의약품과도 다르다. 수술로 떼어낸 환자의 종양을 분석해 암세포에만 나타나는 돌연변이를 찾은 뒤 최대 34개의 신생항원을 담은 mRNA 치료제를 환자별로 제작한다. 이를 투여하면 면역세포가 해당 신생항원을 암세포의 표지로 학습하고, 같은 특징을 가진 암세포를 찾아 공격한다.

제약·바이오업계에서 별다른 설명 없이 암백신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이 같은 치료용 암백신을 뜻한다. ‘가다실’이나 ‘서바릭스’처럼 자궁경부암 발생 위험을 낮추는 백신과는 다른 범주다. 자궁경부암 예방백신은 암을 유발하는 인유두종바이러스(HPV)의 감염을 사전에 차단한다.

반면 치료용 암백신은 이미 발생한 암세포의 항원을 면역체계에 알려주는 항암제다. 자궁경부암 예방백신은 암을 유발하는 바이러스의 항원을 사용한다면, 치료용 암백신은 암세포가 발현하는 항원을 이용하는 것이다. 같은 백신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만 완전히 다른 종류의 의약품이라고 할 수 있다.

치료용 암백신은 오히려 넓은 의미에서 면역항암제에 포함된다. 다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면역항암제라고 부르는 ‘키트루다’, ‘옵디보’와 같은 면역관문억제제와는 역할이 다르다.

면역관문억제제는 암세포가 면역세포의 일종인 T세포에 보내는 ‘공격 중지’ 신호를 차단해 T세포가 암세포를 계속 공격할 수 있도록 한다. 반면 암백신은 암세포의 ‘수배전단’을 면역체계에 배포하고, 해당 암세포를 식별해 공격하는 T세포를 활성화·증식시킨다. 아무리 공격을 막는 브레이크를 풀어도 암세포를 알아보는 T세포가 충분하지 않으면 치료 효과는 제한될 수 있다. 암백신으로 암세포를 겨냥하는 T세포 병력을 늘리고, 면역관문억제제로 이들의 공격을 가로막는 신호를 제거하는 병용 전략이 주목받는 이유다.

대표적인 국내 암백신 개발사인 애스톤사이언스의 정헌 대표는 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면역관문억제제는 T세포가 암세포를 더 잘 죽일 수 있도록 억제 신호를 차단하고, 암백신은 T세포가 암세포를 알아보도록 교육한다”며 “출발점은 다르지만 결국 T세포를 이용해 암세포를 죽인다는 점은 같다”고 설명했다.

암백신·키트루다 병용…빠른 공격과 장기 방어 동시에

모더나도 인티스메란을 단독으로 투여하지 않고 키트루다와 병용했다. 수술을 마친 2B~4기 흑색종 환자 1137명을 대상으로 인티스메란·키트루다 병용군과 키트루다 단독군을 비교했다. 병용군은 암이 재발하거나 멀리 전이되기까지의 기간을 모두 유의하게 늘렸다. 새로운 안전성 문제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직 임상 3상의 구체적인 위험감소율은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앞선 임상 2b상의 5년 추적 결과에서는 병용군의 재발·사망 위험이 키트루다 단독군보다 49%, 원격전이·사망 위험은 59% 낮았다. 양사는 전체생존기간을 계속 추적하는 한편 국제학회에서 상세 결과를 발표하고 각국 규제기관과 허가 신청을 논의할 계획이다.

면역관문억제제는 암세포를 비교적 빠르게 공격하도록 돕고, 암백신은 면역원성을 오래 유지해 장기간 효과가 이어지도록 할 수 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역할 때문에 병용 시 상승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시장조사업체마다 HPV 예방백신과 이미 상용화된 면역치료제의 포함 범위가 달라 추정치에는 차이가 있지만, 퓨처마켓인사이트는 글로벌 암백신 시장이 2026년 126억 달러(약 17조6000억원)에서 2036년 393억 달러(약 58조8000억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중 치료용 암백신이 올해 전체 시장의 62.4%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단순 환산하면 약 79억 달러(약 11조원) 규모다.

항원 찾고 임상 설계까지…높은 진입장벽

국내에서도 암백신 개발이 진행 중이다. 애스톤사이언스는 HER2 항원을 표적으로 하는 플라스미드 DNA 기반 범용 암백신 AST-301을 개발 중이다. 환자마다 제품을 따로 만드는 모더나의 개인맞춤형 방식과 달리 HER2를 발현하는 여러 환자에게 같은 백신을 투여하는 방식이다.

AST-301은 위암 대상 허가용 임상 2상 환자 투약을 마치고 올해 하반기 톱라인 발표를 앞두고 있다. 애스톤사이언스는 AST-301과 키트루다 병용 가능성도 전임상에서 확인했으며, 유방암에서는 키트루다 등 표준 보조요법과 함께 투여하는 임상 전략을 채택했다.

HLB(028300)의 미국 자회사 이뮤노믹테라퓨틱스도 암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이뮤노믹은 자체 UNITE 플랫폼을 적용한 자가증폭 RNA 암백신 ITI-5000을 삼중음성유방암 치료제로 개발 중이다. 지난 7월 미국 임상 1상 첫 환자 투약을 시작했으며, 단독요법과 키트루다 병용요법을 순차적으로 평가한다.

과거에는 제넥신(095700)과 차백신연구소(현 아리바이오랩(261780)) 등도 암백신 개발에 도전한 바 있다. 제넥신은 HPV 치료용 DNA 백신 GX-188E의 자궁경부암 임상 2상까지 완료했지만 시장성과 후기 임상 비용 등을 고려해 조건부허가와 임상 3상 추진을 보류했다. 차백신연구소도 면역증강제 ‘엘-팜포’를 활용한 암백신을 전임상 단계까지 개발했지만, 최근 경영권이 아리바이오 측으로 넘어가면서 연구개발의 무게중심이 치매 분야로 이동했다.

많은 제약·바이오기업들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보류할 정도로 암백신 개발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정상세포와 구별되면서도 강한 면역반응을 일으킬 항원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항원에 대한 T세포 반응이 확인되더라도 실제 종양 재발과 사망을 줄였다는 점까지 임상에서 입증해야 한다. 일반 항암제와 달리 효과가 나타나는 데 시간이 필요해 환자군과 투여 시점을 정하는 임상 설계도 까다롭다.

정헌 애스톤사이언스 대표가 암 치료 백신의 개발 방향과 시장 동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정헌 애스톤사이언스 대표가 암 치료 백신의 개발 방향과 시장 동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정 대표는 “개인맞춤형 백신은 환자별 신생항원을 찾아야 하고, 범용 백신은 여러 환자의 암세포에 공통으로 발현되면서 T세포가 잘 인식하는 항원을 찾아야 한다”며 “적절한 항원 발굴뿐 아니라 일반 항암제와 다른 임상 설계가 필요해 장기간 노하우를 축적해야 하는 분야”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높은 개발 난도로 국내 암백신 개발이 잇달아 속도를 내지 못했지만, 모더나의 임상 3상 성공으로 시장 가능성이 확인되면서 현재 임상을 진행 중인 국내 개발사들의 가치도 재조명될 전망이다.

애스톤사이언스도 최근 396억원 규모의 시리즈D 투자유치를 마치고 상장 재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정 대표는 “AST-301 임상 2상 톱라인 발표 시점에 맞춰 올 하반기부터 기업공개(IPO) 준비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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